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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교분리로 본 한국교회의 역사 5 등록일 2018.02.09
글쓴이 백향나무지기 조회 341

정교분리로 본 한국교회의 역사 5

정교분리로 본 한국교회의 역사 5

 

배덕만(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지난 2월부터 한국교회 정치참여의 역사에 대해서 배덕만 교수님께서 글을 연재해 주고 계십니다. 특별히 1945년 해방이후부터 현재까지 보수적 개신교의 정치참여를 중점으로 쓰신 글입니다. 이번호에는 87년 이후 정치과 교회의 관계 중 이명박 정부와 개신교에 대한 주제이며 전체 글에 대한 정리이기도 합니다. 연재해주신 배덕만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명박 정부와 개신교

소위 ‘잃어버린 10년’ 동안 절치부심했던 보수적 개신교인들은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몰표를 던졌다. 예를 들어, 뉴라이트전국연합은 2007년 11월 소속회원 17만 명의 이름으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지지 성명서’를 내고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를 적극 지지할 것임을 천명했다. 결국, 그들의 소망과 노력의 결과, 이명박 후보가 제17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장로 대통령 당선에 일등공신이 된 보수적 개신교인들은 이후에도 이명박 정부의 강력한 지지 세력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종교편향 문제를 둘러싸고 양자 간에 긴장관계가 형성되기도 했다.

먼저, 한기총으로 대변되는 보수적 개신교 그룹은 이명박 정부의 집권기간 내내 정부와 밀월관계를 유지했다. 일차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내각은 소위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출신) 내각으로 불릴 정도로 친개신교적 성향을 노골화했다. 이명박 자신이 서울시장 시절 한 기도모임에서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발언을 하고, 대통령 재임 중에 참석한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무릎 꿇고 기도함으로써 종교편향논쟁의 촉매가 될 정도로 개신교와 밀월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이명박 정부에 대한 보수진영의 지지는 가히 절대적이었다. 미국산쇠고기수입문제로 촉발된 촛불시위, 한미FTA협상체결, 용산참사, 천안함사건, 4대강개발사업 등, 이명박 정부가 심각한 저항과 위기에 직면했을 때마다 보수진영은 변함없이 지지를 선언했다. 예를 들어, 4대강개발사업에 대해 전국적으로 반대운동이 일어나고 대부분의 종단들이 반대성명서를 발표했을 때, 유일하게 한기총만 지지성명을 발표했던 것이다(2010년 5월 25일).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유착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갈등의 핵은 정부의 종교차별에 대한 보수진영의 반발이었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에 대한 저항은 불교계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 후, 불교계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등에 의해 불교에 대한 종교차별이 발생했다며 2008년 8월 27일에 서울시청 광장에서 ‘범불교도대회’를 개최했던 것이다. 하지만 곧 개신교 보수진영에서도 ‘템플스테이 국고지원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마찰을 빚었다. 이런 갈등은 ‘전통문화보존’이라는 명목 하에 불교계에 지급되는 국고지원이 타종교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욱 악화되었다. 2011년에는 이슬람 채권법인 수쿠크법의 도입문제로 개신교 보수진영 내에서 강력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개신교 진영은 이 채권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테러를 부추기고 국내의 이슬람확산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 법의 도입을 반대한 것이다. 특히, 조용기 목사는 “만일 이슬람 펀드에 정부가 동의를 하면 나는 영원히 대통령과 싸우겠다. 대통령을 당선시키려고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노력을 한 것만큼 하야시키기 위해 싸우겠다.”라고 발언하여, 이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최근에는 소위 “종자연” 문제로 보수진영이 다시 한 번 종교차별문제를 제기하며 불교계와 정부를 향해 저항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종교편향 사례를 조사하는 프로젝트를 특정종교(불교)에게 위임한 정부의 결정이 정교분리를 위반한 종교차별의 사례이며, 종자연이 발표한 편향의 사례가 기독교에만 집중된 것도 기독교에 대한 부당한 공격이라고 반박한 것이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의 초반과 후기에,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중요한 변화를 보였다.

한편, 이 시기에 진보적 복음주의 진영은 두 가지 방향에서 저항운동을 지속했다. 먼저,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정부의 정책과 사회적 혼란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퍼부었다. 이 진영을 대표하는 언론 『복음과 상황』과 『뉴스앤조이』는 정부의 광우병파동, 4대강 살리기 사업, 한미FTA 등에 반대하는 기사들을 실었다. 이 점에서 진보적 복음주의는 주류 보수진영에서 이탈하여 NCCK로 대표되는 진보주의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이 진영은 이명박 정부와 유착관계를 유지하고 부패한 대형교회를 옹호하는 한기총을 해체하기 위한 운동에 뛰어들었으며, 보수인사들로 구성된 기독당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이 진영의 대표적 지도자인 손봉호 교수가 한기총해체운동을 주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개혁적 성향의 김동호 목사가 대형교회의 부자세습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또한 이들은 지난 총선에서 ‘친북좌파척결과 교회세금인하’를 공약으로 내걸며 전광훈 목사의 주도 하에 창당된 기독자유민주당(기독당)을 맹렬히 비판했다. 특히, 새로운 목회를 지향하는 젊은 목회자들의 모임인 ‘교회 2.0 목회자운동’은 성명을 발표하고 기독당 창당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런 움직임을 고려할 때, 진보적 복음주의 진영은 한기총을 중심으로 한 개신교 보수주의 주류와 결별하고 자신만의 독자노선을 구축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가

이 시기에 가장 주목할 점은 보수적 개신교 진영에서 ‘정교분리’에 대한 종전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변경한 것이다. 정권의 성격이 변함에 따라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발생했다. 무엇보다, 해방 후 50여 년 간 정치적 이념을 공유하면서 유지해온 정교유착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함께 처음으로 깨어졌다. 이 시기에는 정부의 친북반미정책과 사학법개정 때문에 정부와 교회 간에 극단적 갈등관계가 형성되었다. 더 이상 국가로부터 정치적 동질성을 발견할 수 없게 되자, 정교분리를 ‘교회의 정치참여 금지’로 해석하며 진보진영의 반정부활동을 비판하던 종전의 입장을 바꿔 자신들이 공개적이고 적극적으로 반정부활동을 전개한 것이다. 반면, 정부의 정책과 교회의 기득권이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이번에는 정교분리를 내세워 정부정책을 강력히 비판했다. 이것은 지난 50년 간 정부로부터 각종 종교적 특혜를 받을 때, 이 문제를 정교분리와 상관없는 것으로 간주하던 태도와 상반된 반응이다.

한편, 이명박 정부에서 정치적·이념적 동질성을 회복하자, 개신교 보수진영은 다시 정부와 밀월관계를 시작했다. 정부요직을 보수적 개신교인들이 거의 독식했으며 정부의 위기상황에서 보수교회는 정권의 변함없는 지지 세력으로 기능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타 종교, 특히 불교와 이슬람에 우호적 정책을 도입하자, 개신교 보수진영 내에서 종교편향, 종교차별, 정교분리 등을 내세워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정부와 개신교 보수진영 사이에는 정치적 유착관계와 종교적 갈등관계가 부조화를 이루며 나타났고 정교분리의 양태도 가변적이었다. 특히, 보수진영이 다시 내적으로 진보와 보수로 분열되면서 보수진영과 정교분리의 문제는 보다 복잡한 향상을 보이게 되었다. 즉, 진보적 복음주의 진영(혹은 복음주의 좌파)은 신학적 측면에서 보수주의를 유지하지만, 정치사회적 측면에선 보수진영에서 이탈하여 진보진영에 근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마치며

이상에서 분단 이후 한국사회에서 보수적 개신교와 정부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정교분리’란 개념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제, 앞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고, 한국교회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몇 가지 고려할 사항들을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개신교 보수진영은 기본적으로 정교분리를 ‘교회의 정치참여금지’로 이해했고, 국가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런 이해와 원칙은 국가와 교회가 정치적 입장을 공유하고 국가가 교회를 후원하는 상황에서, 그리고 보수진영이 진보진영의 정치참여를 비판하거나 자기 내부에서 감지된 반정부적 움직임을 억제하려는 경우에만 선별적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보수진영은 다양한 방식으로 국가정책에 협조함으로써 현실적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결국, 정부에 대한 비판적 참여에 대해선 정교분리를 내세워 공격했지만 자신의 친정부적 참여에 대해선 정교분리를 적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어서, 보수진영이 국가의 정치적·종교적 정책을 용납할 수 없을 때는 예외 없이 국가에 저항했다. 이런 경우에, 정교분리에 대한 종전의 이해를 파기하고, 정교분리를 “국가의 종교문제 개입금지”로 해석하면서 자신들의 반정부적 정치참여를 정당화했다. 즉, 개신교 보수진영은 국가와의 관계에 따라 정교분리의 의미를 실용적으로 재해석하고 적용한 것이다. 따라서 개신교 보수진영이 일관되게 정교분리를 내세워 정치참여에 소극적이었다는 일군의 주장은 수정되어야 한다. 개신교 보수진영은 해방 이후 줄곧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했으며,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정교분리를 재해석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변경해 왔을 뿐이다.

둘째, 개신교 보수진영은 “국가의 종교문제 개입금지”로서 정교분리를 매우 자의적으로 해석·적용해 왔다. 군정 이후 지금까지, 보수진영은 자신이 정부로부터 받은 특혜성 지원을 정교분리위반으로 간주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와의 밀월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분투했다. 하지만 정부의 종교정책이 자신의 기득권과 충돌하거나 훼손될 때는 예외 없이 국가가 종교차별이나 종교자유를 침해함으로써 정교분리를 위반했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가 사학법개정을 추진하여 개신교사학들의 운영에 간섭하거나 정부가 불교 템플스테이를 국고에서 지원하거나 이슬람 스쿠크법 도입을 추진할 때, 그런 모습이 극명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결국, ‘국가의 종교문제 개입금지’로서의 정교분리도, 개신교 보수진영은 보편적 차원의 공정한 시각보다는 자신의 경제적·종교적 이익에 득이 되는가 아니면 손해가 되는가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고 적용했다.

셋째, 개신교 보수진영과 국가의 관계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던 요소들은 반공과 친미라는 정치이념과 종교자유라는 종교적 이해관계였다. 군정과 제1공화국, 군부정권과 이명박 정부 시절, 개신교 보수진영은 밀월관계를 유지했다. 반면, 김대중·노무현 정권과는 극단적인 대립관계를 형성했다. 이명박 정부의 경우, 집권초기의 유착관계와 달리 집권후기에는 적잖은 갈등을 겪었다. 그 모든 경우에, 밀월과 대립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의제는 반공과 친미, 그리고 종교의 자유였다. 정부가 반공과 친미를 정권의 핵심정책으로 추진할 때, 보수진영은 적극적으로 정부를 지지했다. 동시에 국가가 교회의 선교활동을 다각도로 지원할 때, 교회는 정부정책에 열정적으로 후원했다. 하지만 정부가 친북과 반미로 전향하거나 교회의 이권에 간섭했을 때, 보수진영은 가장 강력한 반정부세력으로 돌변했다. 이들에게 공산주의는 자유주의신학보다 위험하고 미국은 천년왕국의 다른 이름이며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는 성경과 예수의 궁극적 가르침으로 보일 정도다.

넷째, 지난 60년간 개신교 보수진영과 국가 간의 관계형성에 영향을 끼친 것은 냉전체제였다. 분단으로 북에서 내려온 보수적 개신교인들이 한국사회에 정착하면서 마침 남한사회를 점령한 미국과 그 영향 속에 탄생한 정권들의 영향 하에서 한국교회, 특히 개신교 보수진영은 반공과 친미를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으로 내재화했다. 공산주의에 의해 교회와 재산을 빼앗겼다는 피해의식과 남한에서 북한출신으로 살아야 했던 위기의식은 반공·친미정권과 유착하도록 이끌었던 강력한 심리적 기제였고, 세계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현실과 우방으로서 미국의 지속적 후원은 미국의 제국적 폭력과 독재정권의 폭정에 맹목적 면죄부를 부여했던 정치적 환경이었다. 그 속에서 개신교 보수진영은 경이적인 성장을 경험하며 막대한 경제적, 종교적, 그리고 정치적 힘을 지닌 거대종교가 되었다. 하지만, 최근에 과도한 세속화·정치화의 부정적 징후가 뚜렷하게 노출되면서 종교적·사회적 위상이 빠르게 추락하는 위기상황에 직면했다. 결국, 분단체제는 개신교 보수진영의 성장을 가능케 한 ‘하늘이 내린 기회’였으나, 최근에는 성장의 발목을 잡고 존재마저 위협하는 ‘사망의 몸’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 같다.

다섯째, 개신교 보수진영이 보수와 진보 그룹으로 양분되고 있다. 87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한 소위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이 한기총을 중심으로 한 보수주의 주류의 행보에서 이탈했고 최근에는 사안마다 한기총과 충돌을 반복하더니 아예 한기총해체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그룹은 신학적 보수주의를 견지하면서 정치·사회적 측면에서 점점 더 진보적 색체를 강화하고 있다. 아직 주류그룹에 비해 양적 측면에서 열세에 놓여있지만 그들의 영향은 계속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결국, 이들을 통해, 개신교 보수진영의 내용이 다양해지고 정교분리에 대한 입장과 반응도 한층 더 복잡해지고 있다. 앞으로, 이들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끝으로, 한기총해체운동은 특정이념 및 정권과 과도히 유착되었던 개신교 보수진영이 당면한 한계와 위기의 극단적 표현으로 보인다. 사실, 반공과 친미는 해방 후 한국교회 전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답이었다. 냉전체제가 강화되면서, 북한출신 중심의 보수교회는 다른 답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반공과 친미의 선봉에 섰고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저항했다. 분배 대신 성장을, 평등 대신 자유를 옹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몸집은 커졌지만 정신은 병약해졌고, 배는 부르지만 영혼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냉전체제가 지속되는 한 개신교 보수진영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하다. 즉, 분단체제의 극복과 교회개혁의 실현은 공동운명이란 뜻이다. 분단체제 속에서 보수교회는 예수의 정신을 실현할 수 없다. 생존을 위해 냉전이데올로기에 집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냉전체제와 교회타락의 운명적 관계를 깨달을 때, 그리고 “창조적 긴장관계”라는 정교분리의 진정한 의미를 인식할 때, 비로소 개신교 보수진영은 이념대신 복음을 미국대신 하나님나라를 자본대신 성령을 의지하게 될 것이다. 바로 거기서부터, 교회개혁, 민족통일, 민주화, 그리고 세계평화를 향한 대장정의 막이 오를 것이다.

 

 

 

배덕만 교수 | 느헤미야 기독연구원 전임 연구원이며, 바른교회아카데미 연구위원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