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HOME

교회소개

Home > 알고싶어요 > 목사님칼럼

제목 정교분리로 본 한국교회의 역사 4 등록일 2018.02.09
글쓴이 백향나무지기 조회 365


정교분리로 본 한국교회의 역사 4 

배덕만(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지난 2월부터 한국교회 정치참여의 역사에 대해서 배덕만 교수님께서 글을 연재해 주고 계십니다. 특별히 1945년 해방이후부터 현재까지 보수적 개신교의 정치참여를 중점으로 쓰신 글입니다. 지난호에는 1960-1987년까지 교회와 정치참여에 대한 부분을 살펴 보았습니다. 이번호에는 87년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교회와 정치참여에 대한 부분을 살펴 보겠습니다.

 

3. 1987-2007년 노무현 정부까지

 

(1)6월 항쟁(1987)과 개신교

 

1987년 6월 항쟁은 이 땅의 민주화운동에 대전환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개신교에도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진보진영의 경우, 장기간의 민주화운동 후 통일과 민주화의 운명적 관계를 깨닫고 반공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통일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1987년 6월 항쟁에 적극 참여했으며, 1988년에 발표된 NCCK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의 선언’을 통해 자신들의 변화된 입장을 세상에 천명했다. 보수진영에서 발생한 변화도 결정적이었다. 87년의 경험은 보수진영 내에서 소위 “87년형 복음주의”라는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출현을 야기했고, 88년 KNCC 선언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이 결집하여 ‘한국기독교총연맹(한기총)’ 탄생했다. 즉, 87년 이후 보수진영이 내부적으로 진보와 보수로 양분된 것이다.

 

1987년 6월 항쟁을 전후로, 보수진영 내에 새로운 움직임들이 감지되기 시작되었다. 최초의 움직임은 학생들 안에서 감지되었다. 1984년에 일군의 복음주의 청년들이 ‘기독교학문연구회’를 조직하고 기독교세계관운동을 전개했으며, 이 모임을 기반으로 1986년에 ‘기독교문화연구회’가 탄생했다. 1987년에는 복음주의 선교단체인 IVF 간사회가 ‘오늘을 사는 기독 대학생의 신앙고백과 결의’를 선언했으며 이것이 “선교단체와 신학생들의 사회참여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런 흐름 속에, 1987년 11월 20일 공정선거감시와 민주정부수립을 위한 ‘복음주의청년학생협의회’가 발족되었고, 1988년 3월 1일에 ‘복음주의청년연합’이 창립되었다. 학생들이 주도했던 이런 운동들과 병행하여 1987년 12월에 복음주의 대학교수들을 중심으로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발족됐다. 이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1987년 7월 8일)과 ‘교회개혁실천연대’(2002년 11월 24일)가 연속적으로 창립됨으로써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이 본격적으로 사회개혁에 합류했다. 이런 운동의 대표적 지도자였던 손봉호는 기윤실의 설립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글을 통해, 이 시기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변화된 생각과 한계를 단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

 

보수적 신앙인들은 혁명적, 나아가서 폭력적 방법으로 민주화와 평등을 성취한다는 데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었다...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면서 기독 교수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같이 고민하며 토론했으며 몇몇은 좀 더 적극적으로 민주화 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민주주의와 사회평등 등 사회이상을 달성하는데 있어서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은 개개인의 도덕적인 삶과 윤리적 모범이라고 생각했다...구조개혁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자신들의 삶을 도덕적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시작된 것이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다.

 

이 시기에 보수진영의 정치참여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사건은 KNCC의 1988년 선언문에 대한 반작용으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1989년에 탄생한 것이다. KNCC선언문에 포함된 반공에 대한 역사적 반성과 주한미군철수 요구는 즉각적으로 북한출신의 보수적 개신교인들을 경악시켰다. 결국, 한경직 목사를 비롯한 일군의 반공적 목사들의 주도 하에 1989년 12월 28일에 36개교단과 6개 기관이 모여 한기총을 조직했다. 곧, 이 단체는 가입교단의 수와 재정 면에서 KNCC를 압도하면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구로 부상했다. 비록, 교회연합, 복음화, 사회봉사를 자신의 주요사업으로 설정했지만 한기총은 강력한 반공주의에 기초하여 현실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허명섭의 평가처럼, “이후 한기총은 기독교 보수·복음주의 세력의 결집체가 되었고, 반공과 우미(優美)를 견인하는 한국교회의 중심이 되었다.”

 

(2)김대중·노무현 정부와 개신교

 

한국개신교의 보수진영은 김대중이 제15대 대통령에 취임했던 1998년부터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에서 퇴임한 2008년까지를 “잃어버린 10년”으로 정의한다. 국민의 정부는 소위 햇볕정책과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북한과의 우호적 관계를 형성했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친북과 반미의 양상으로 발전했다. 이런 상황은 노무현 정부에 들어 더욱 심화되었다. 이것은 한국사회의 보수주의자들에게 존재론적 위협으로 인식되었고, 그들은 곧 정치적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변화 속에, 한국개신교의 보수진영도 반정부활동에 적극 가담했다. 한기총이 그 선봉에 섰다. 동시에, 다양한 형태의 우파적 기독교시민단체들이 결성되어 그 대오에 합류했고, 이런 흐름은 기독교 정당의 창당에서 절정에 달했다. 분단 이후 50년간 정교분리를 외치면서도 정부와 유착관계를 유지해 온 개신교 보수진영이 역사상 처음으로 정부에게 전면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기총은 친북·반미적 성향의 김대중 정부가 등장하면서 대한민국 정통성이 흔들린다고 판단하고, 반정부 투쟁의 선봉에 섰다. 한기총의 이런 움직임은 2002년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과 함께 더욱 강력해졌다. 특히, 한기총은 2004년에 추진된 ‘개정사립학교법’ 때문에 정부와 극단적 대치상황에 이르렀다. “좌편향적인 정부를 몰아내고 보수적인 정권이 들어서야 한다고 생각”하고 “보수주의자들은 강력한 반정부 운동을 전개했다.” 이 시기에 한기총이 주도한 반정부 집회들은 다음과 같다.

 

3·1절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국금식기도회와 반핵, 반김 자유 통일 3·1절 국민 대회(2003년 3월 1일, 여의도 한강 시민 공원 및 서울 시청 광장), 구국기도회 및 친북 좌익 척결 부패 추방을 위한 3·1절 국민 대회(2004년 3월 1일, 서울 시청 광장),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및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그리고 대한민국을 위한 비상 구국 기도회(2004년 10월 4일, 서울 시청 광장), 북핵 반대와 북한 인권을 위한 국민 화합 대회(2005년 6월 25일, 대학로), 대한민국을 위한 비상 구국 기도회(2006년 9월 2일, 서울 시청 광장) 등.

 

2004을 기점으로, 개신교 보수진영에서 소위 “뉴라이트”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이들도 노무현 정부의 국가보안법폐지, 사학법 개정 등에서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로 상징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하고 국가정책에 강력히 저항한 것이다. 최초로 조직된 ‘기독교사회책임’은 “대선을 통한 체제 밖 좌파세력과 그와 연결된 세력의 척결, 선진화 운동, 북한인권운동 등을 핵심적 과제로 제시했다.” 뒤를 이어, ‘뉴라이트전국연합’(2005), ‘한국기독교개혁운동’(2005), ‘기독교뉴라이트’(2006), ‘뉴라이트기독교연합’(2007) 등이 연속적으로 조직되어, 합리적 보수우파를 표방하며 친북좌파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해 분투했다. 이들은 기존의 보수주의를 타락한 수구세력으로 비판하며 올드라이트(Old Right)라고 명명했고 자신들을 뉴라이트(New Right)라고 명명하며 구별했으나, 반공·친미를 축으로 한 우파적 정체성에는 차이가 없었다. 반면, 정부와 밀월관계를 유지했던 올드라이트와 달리, 이들은 좌파정부와 치열한 갈등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국가와 종교의 관계 면에서 이전과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이 시기에 보수적 개신교가 정치에 참여했던 또 하나의 중요한 방법은 기독교 정당을 창당하여, 현실정치에 직접 참여하려 한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국개신교인들은 해방과 함께 북한에서 몇몇 목회자들의 주도 하에 기독교정당을 시도했다 실패한 적이 있다. 기독교와 가장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제1공화국 시절에도 기독교정당을 조직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하지만 좌파적 성향의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개신교가 가장 경계하는 이단 통일교가 정당을 창당하려하자, 이에 자극받은 일군의 보수적 개신교인들이 기독교정당을 창당했다. 2004년에 ‘한국기독당’이 조직되어 총선에 참여했으나 “지역구에서 모두 참패하고 정당투표에서도 1.1퍼센트인 228,798표를 얻는데 그쳐 단 한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했다.”

 

배덕만 교수 | 느헤미야 기독연구원 전임 연구원이며, 바른교회아카데미 연구위원으로 섬기고 있다.